시험관아기 착상의 창과 개인 맞춤 이식, ERA가 바꾸는 반복 실패의 흐름
작성일26-07-18 18:15 조회 49본문
연세아이소망여성의원 대표원장 박이석
시험관아기 시술에서 가장 답답한 순간이 있다.
배아 등급도 좋고, 자궁내막 두께도 충분하고, 호르몬 수치도 괜찮은데 착상이 안 되는 것이다.
한 번이면 '다음에 되겠지' 할 수 있지만,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환자분도, 나도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지.
삼성제일병원과 차병원의 불임센터에서 수십 년간 이런 분들을 만나왔다.
모든 검사가 정상인데 반복적으로 착상이 안 되는 환자분 앞에서, "다음에는 될 겁니다"라는 말만 반복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경우 '착상의 창'이라는 이야기부터 꺼내게 됐다.
착상의 창이란
착상의 창(Window of Implantation)은 자궁내막이 배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대를 말한다. 배란 후 5~7일째, 약 24~48시간 동안만 열린다.
비유하자면 자궁내막이 배아에게 문을 여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이 시간에 배아가 도달하면 착상이 이루어지고, 너무 이르거나 늦으면 아무리 건강한 배아라도 붙지 못한다.
그동안 시험관아기 시술에서는 이 착상의 창이 모든 여성에게 거의 같다고 가정하고, 표준 시점에 맞춰 배아를 이식해 왔다. 대부분의 환자분에게는 이 가정이 맞는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착상에 실패하는 환자분 중 일부는, 이 창이 열리는 시점이 표준과 다른 경우가 있다. 하루 이상 앞당겨져 있거나, 뒤로 밀려 있는 것이다.
Ruiz-Alonso 등이 Fertility and Sterility(2013)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반복 착상 실패(RIF) 환자 85명을 분석한 결과 약 25%에서 착상의 창이 표준 시점과 어긋나 있었다.
이 연구는 "표준 시점에 이식하는 것이 이 환자분들에게는 오히려 맞지 않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ERA 검사, 착상의 창을 개인별로 찾는 방법
ERA(Endometrial Receptivity Analysis, 자궁내막 수용성 검사)는 이 착상의 창이 환자 개인에게 정확히 언제 열리는지를 확인하는 검사다. 자궁내막 조직을 소량 채취하여 248개 유전자의 발현 패턴을 분석하고, 그 시점의 내막이 배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수용 상태, receptive)를 판별한다.
결과는 세 가지로 나온다. 수용 상태(receptive), 이식 시점보다 아직 이른 상태(pre-receptive), 이미 지나간 상태(post-receptive). pre-receptive로 나오면 이식 시점을 12~24시간 늦추고, post-receptive로 나오면 앞당기는 식으로 개인 맞춤 이식(personalized embryo transfer, pET)을 시행한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그동안은 "대부분의 여성이 이 날짜에 착상의 창이 열린다"는 평균값에 맞춰 이식했다면, ERA는 "이 환자분의 창은 정확히 언제 열리는가"를 개인별로 확인해서 거기에 맞추는 것이다.
누구에게 고려하나
나는 모든 환자분에게 ERA를 권하지는 않는다. 이 검사가 의미를 가지려면, 먼저 다른 원인들이 배제되어야 한다.
배아의 질이 확인됐고, 자궁 내 구조적 문제(근종, 폴립, 유착 등)가 없고, 내분비 이상이 교정된 상태에서도 2회 이상 양호한 등급의 배아가 착상에 실패한 경우. 이런 상황에서 "혹시 이식 타이밍 자체가 이 환자분에게 맞지 않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때 ERA를 고려한다.
삼성제일병원과 차병원에서 수십 년간 진료하면서, 모든 검사가 정상인데도 반복적으로 착상이 안 되는 환자분들에게 ERA가 실질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경우를 경험해 왔다. 착상의 창이 하루 뒤로 밀려 있었던 것을 확인하고, 이식 시점을 조정한 뒤 임신에 성공한 사례도 있었다.
ERA가 만능은 아니다
여기서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다.
ERA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아직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2024년 정저우대학의 대규모 연구에서는 ERA를 적용한 환자군과 적용하지 않은 환자군 사이에 유의미한 임신율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결과도 보고됐다.
이것은 ERA가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라, 반복 착상 실패의 원인이 착상의 창 하나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면역 요인, 자궁 혈류, 배아의 미세한 염색체 이상, 만성 자궁내막염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ERA는 그 여러 원인 중 '이식 타이밍'이라는 변수를 정밀하게 확인하는 도구이지, 반복 착상 실패의 유일한 답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ERA 하나만 단독으로 시행하기보다, 면역 검사, 자궁내막 조직검사, PGT-A 등과 함께 반복 착상 실패의 원인을 하나씩 좁혀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여러 검사를 조합해서 "이 환자분은 왜 안 되는가"를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환자분들에게 드리는 말씀
반복 착상 실패를 겪고 계신 분들이 가장 힘들어하시는 것은, 이유를 모른 채 같은 결과가 반복되는 것이다. "왜 안 되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실 때의 표정을 나는 수없이 봐 왔다.
ERA가 모든 분에게 답을 드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 이식하느냐'가 왜 중요한지, 그 시점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다음 시도의 전략이 달라진다. 연세아이소망여성의원에서도 반복 착상 실패 환자분들을 대상으로, ERA를 포함한 원인 분석과 개인 맞춤 이식 전략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원인을 하나씩 좁혀가는 과정 자체가, 다음 시도의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 된다.
글쓴이
박이석 대표원장
연세아이소망여성의원 | 산부인과 전문의
연세대 의대 졸업 | 전 삼성제일병원 불임센터 소장 | 전 차병원 불임센터 진료과장 | 현 연세대·차의대 외래교수
참고: Ruiz-Alonso M et al. Fertil Steril. 2013;100(3):818-24. / Zhengzhou Univ. 2024 (PSM analysis, n=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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